"아버지와 동생을 잃었어요 …"
"이 사진 한 장 빼고는 남은 게 아무것도 없어요 … 집도 없어졌고요."
"이제 살 곳이 사라졌어요."

저는 초대형 태풍 카트리나 희생자들을 위해 지난 열흘간 미국 적십자사 소속으로 이재민 수용소에서 구호식량을 나르거나 구호 약품을 배달하는 자원봉사활동을 했습니다. 봉사활동을 통해 많은 것을 경험하고, 다양한 구호작업을 수행했으며, 이를 통해 세계 곳곳에서 온 많은 다른 자원봉사자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첫 5일간은 루이지애나주(State of Louisiana) 전 피해지역을 트럭을 타고 돌아다니며 수재민을 위한 구호물을 전달하고 임시수용소 쓰레기를 청소를 주로 했습니다.

수해현장을 누벼야 했던 첫 봉사활동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말로만 들었던 최대 피해지역인 늪지대와 강어귀 지역을 포함한 재난지역을 직접 목격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육체적으로 별로 튼튼하지 않은 저로서는 처음 며칠이 정말 힘들었습니다. 마른 체구로, 수 백통의 식수를 배달하고, 수백 파운드의 구호식량과 간이침대 등을 나르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죠. 또한, 순식간에 쓰레기장으로 변해버린 임시수용소를 청소하는 일도 했습니다. 500명이 넘는 수재민이 폐쇄된 임시수용소에 남기고 간 쓰레기의 양은 정말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고 상당히 지저분했습니다. 폐쇄된 두 군데의 이재민 수용소에서 청소를 했었는데, 한 번은 임시수용소로 농구 경기장이 쓰이기도 했습니다.



6일째 되던 날, 운영중인 임시수용소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이 또한 농구 경기장을 수용소로 만든 경우였고 900명이 넘는 이재민을 수용하고 있었습니다. 농구 경기장 수용시설에서의 경험을 통해 느낀 점은 수용소에 임시로 거주하고 있다고 해서 우리의 일상생활이 근본적으로 바뀌지는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이가 있는 가족은 아이를 여전히 학교에 보내야하고, 당뇨병이 있는 환자는 치료를 계속 받아야만 하고, 만삭의 임신부는 아기를 낳아야만 하니까요. 경기장의 라커룸이 신생아 육아실로 바뀐 것을 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7일째 되던 날은 재난지역에서 적십자사 본부로 돌아가는 트럭 안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조금의 휴식도 취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한 주 동안 하루에 16 ~ 18시간을 쉬지도 못하고 봉사활동에만 전념하느라 심신이 많이 지쳐있었지요. 봉사활동 경험이 많은 베테랑 자원봉사자 한분은 저에게 봉사원 자신이 너무 지치면 다른 사람들을 제대로 도울 수 없게 되니까 좀 휴식을 취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머지 반나절은 그 충고를 따라 휴식을 취하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며칠은 재난 피해자들에게 구호금을 전달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최대 피해지역에서 대피해 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의 모든 것을 상실했고, 잃어버린 재산을 복구하는데 필요한 경제력이 전혀 없습니다. 태풍을 피해 갑자기 대피하느라 추가분의 기저귀나 칫솔, 샴푸, 타올, 비상약 등을 챙길 시간이 없었지요. 그래서 많은 가족은 전적으로 일상용품이 필요합니다. 적십자사는 식구 수를 기준으로 개인수표, 식권, 또는 현금의 형태로 구호금을 전달합니다. 특히 잊을 수 없는 기억은 노인보호시설에서 구호금을 전달할 때의 일입니다. 그곳 노인들의 상당수가 70세 이상의 병든 할머니들이었습니다. 한구석에 놓인 피아노에서 제가 할머니들을 위해 피아노를 한 곡 연주해 드렸습니다. 연주를 마쳤을 때 할머니들은 울고 계셨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곡이야." "너무 고맙네"라고 말씀해 주셨지요.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지난 열흘 동안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었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조금이나마 이바지할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에 정말 감사했습니다. 또한, Google 에서는 태풍 구호활동을 특별 홈페이지(영문버전)의 마련과 자원봉사지원을 통해 대대적으로 진행했습니다. 자원봉사 트레이닝에 참가한 직원이 40여 명이며 이중 14명은 직접 현장에서 함께 자원봉사를 할 수 있도록 회사차원의 배려도 해 주었습니다. 제가 이 활동을 하겠다고 결정했을 때, Google에서 기꺼이 제 결정을 지원해 준 것에 무척 감사했습니다. 제 상사는 회사를 비우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 이미 계획된 업무와 미팅 일정을 재조정해 주었습니다.

돌아와 보니 해야 할 많은 일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뿌듯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