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12년 11월 23일 금요일

안녕하세요, 구글코리아의 정재훈 변호사입니다. 

1주간의 런던 프로그램을 마치고 스타트업들의 이상향으로 불리는 실리콘밸리로 날아가면서 오늘날의 실리콘밸리를 있게 한 뭔가 '특별한 비법'을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그 ‘특별한 비법’은 아주 새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런던에서 이미 수도 없이 들었던 창업가정신, 빠른 실패, 네트워킹, 다양성, 이 네 가지였습니다. 이 네 단어가 2주 내내 제 머리 속을 맴돌았습니다.

이번 2주간의 글로벌 K-스타트업에서 가장 크게 얻었던 수확은 그동안 이런 저런 글들을 통해 머리로만 접했던 단어들에 대해 직접 몸으로 느끼며 더 큰 확신을 가지고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국내 스타트업들은 현지에서 얻은 조언들을 통해 보강할 부분을 깨닫게 되었고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정부 기관에서 참여하신 분들께도 향후 어떤 방식으로 스타트업과 창업가정신이라는 주제에 접근해야 할지 깨닫는 계기가 된 소중한 경험이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시는 것처럼, 실리콘 밸리는 IT기업들이 모여있는 도시나 빌딩이 아닙니다. 거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중심이 되는 곳입니다. 사람들이 중심이 되는 실리콘 밸리처럼 스타트업 생태계를 활성화 시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전문가로부터 들었던 조언은 스마트한 인재 확보 (기업가 정신 고취), 창의적인 아이디어 공급 (다양성), 스마트 머니, 다양한 형태의 커뮤니티 네트워킹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추가로 깨달은 것은 그러한 생태계들도 서로 치열한 글로벌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실리콘 밸리 뿐만 아니라 런던 (www.techcitymap.com), 텔아비브, 베를린, 뉴욕 등이 제2의 실리콘 밸리를 꿈꾸며 열심히 생태계를 조성 중이었습니다. 이하에서는 각각 요소에 대해 조금 더 설명을 붙여 보겠습니다.

스타트업 생태계를 구성하는 요소들

창업가정신(entrepreneurship) 
Invent my job. Y-Combinator 출신의 초기 스타트업 Tsumobi의 창업자인 Adam Bouhenguel이 언급한 단어가 제 뇌리에 박혔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 반항심으로 부모님이 원하는 직업을 선택하지 않고 반드시 자신이 직업을 만들어 내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암울한 교육과 취업 현실이 제 머리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스타트업 생태계가 잘 되려면 많은 우수한 인력이 유입되어 도전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마음속에 불타는 열정을 품고 포기하지 않으며 추진해 나가는 정신이 필요합니다. 안정된 일자리가 없기 때문에 그걸 기준으로 직장을 택한다고는 하나 그래서는 미래가 없습니다.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넘어가는 경제단계에 있고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로서는 지식 산업에 미래를 걸어야 하고, 그렇다면 아이디어와 실력만 있으면 손쉽게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인터넷 기반의 스타트업이야 말로 향후 우리나라의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의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창업가 육성은 교육 시스템의 혁신이 없이는 쉽지 않습니다. 실리콘 밸리의 어느 분은 창업가정신이 살아나는데 30년은 걸릴 것이라고 합니다. 너무 깁니다.

실리콘 밸리에서 스타트업 경험을 가진 Adam Bouhenguel, Josh Wildon, Ben Tauber, 김태훈(사진 왼쪽부터)씨와의 패널 토론. Ben은 지난해 구글에 회사를 매각하고 현재 구글플러스팀에서 일하고 있음.

빠른 실패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과 실패를 용인해주고 격려해주는 문화가 많은 사람들이 반복해서 강조하는 내용이었습니다. Minimum Viable Product (MVP)를 가지고 우선 출시하고 고객들로부터 피드백을 받아 본 다음 성공할 것 같지 않으면 빨리 실패하고 다른 아이디어로 넘어가라는 조언이 있었습니다. 개방된 인터넷 환경 하에서는 속도가 관건입니다. 완성된 제품을 만들기까지 미루다가는 혁신의 기회를 놓칠 수 밖에 없습니다. 실리콘 밸리에 가기 전에 제품은 베타 수준이라 하더라도 우선 출시하고 성과를 보여줄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30일 단위로 마일스톤을 정하고 진전을 보여야 합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실행이 중요합니다. 처음에는 어두운 방에 혼자 촛불을 켜놓고 있는 것 같지만 한걸음씩 피드백을 받아가며 황소처럼 소신있게 밀어붙이면 점점 방은 밝아지고 결국 어디로 나가야 할지 보인다고 말한 Tsumobi의 공동창업자 Josh Wilson의 말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네트워킹
실리콘 밸리에서의 네트워킹은 단순한 만남 그 이상이었습니다. 만남을 통해 다양한 피드백을 주고 받고 아는 사람을 소개받아 비즈니스 인맥을 넓혀 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네트워킹은 실리콘 밸리의 핵심 요소이며, 갓 출발한 스타트업에게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네트워킹을 하는데 있어 현지 전문가들의 원조 역시 매우 중요합니다. Y-Combinator의 설립자인 Paul Graham은 인재들이 모여 논의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실리콘 밸리가 탄생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How To Be Silicon Valley). 우연히 옆자리에서 얘기를 나누던 사람과 함께 창업을 하게 되고 투자를 받을 수 있는 스타트업 환경이 실리콘 밸리의 큰 강점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네트워킹 미팅 후에 실제로 연결시키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합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팅 장소에서 만나면 그뿐이고 나중에 별도로 연락해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네트워킹을 위해 꼭 이메일로 먼저 인사하고 LinkedIn으로 연결시키라고 합니다. 어느 사회에서나 마찬가지겠지만 거짓말을 하지 않고 약속을 지키는 것도 중요합니다. 네트워킹이 중요한 곳이므로 한 곳에서 잘못하면 소문은 금방 퍼져나갑니다.

다양성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지만 실감하지 못했던 부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다양한 문화가 가져다 주는 가치를 그들은 진심으로 인정하고 추구하는 듯 보였습니다. 더구나 개방된 인터넷 세상에서는 다양성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영국 스프링보드라는 인큐베이터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 스타트업 Flitto의 사이몬 리(이정수 대표)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외국인의 시각을 가지고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 더 큰 성공을 거둘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팀원도 다양하게 구성하고 여성도 반드시 채용하라고 합니다. 다양성을 갖추면 시장 환경에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고 합니다. 여성 기업가가 가장 많은 곳이 이스라엘이라고 합니다.

개방성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걸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대개의 아이디어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므로 피드백을 더 많이 받아 더 나은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것이 보다 중요합니다. 실리콘 밸리의 전문가들은 아이디어는 5%에 지나지 않고 실행이 95%라고 말합니다. 갖고 있는 아이디어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며 검증 받고, 그러면서 적절한 파트너를 구하고, 아이디어를 더욱 발전 시켜 경쟁적이고 혁신적인 서비스를 시장에 내놓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입니다. 앞서 말한 Adam은 누구나 각자의 일로 바쁘기 때문에 내 아이디어를 훔쳐갈 시간이 없을 것이라고까지 얘기했습니다. 아이디어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걸 실행시키는 능력과 탄탄한 수익모델, 든든한 네트워크가 성공의 열쇠입니다.

스마트 머니
실리콘 밸리에서는 어느 국적의 스타트업이든지 미국에서 (그것도 관행적으로 델라웨어 주 근거) 설립된 회사에만 투자를 합니다. 그래서 투자상담이 성사될 즈음에는 전격적으로 미국회사를 설립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벤처투자자들은 돈을 주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전략과 마케팅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고 네트워킹을 도와줍니다. 그래서 ‘스마트' 머니라고 부르는 겁니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나와 또 스타트업을 차리고 부자가 되면 또 다른 신생 스타트업에 투자를 합니다. 이렇게 연쇄 반응적이고 유기적인 성장을 통해 현재 실리콘 밸리와 같은 스타트업 허브가 형성된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스타트업을 팔 때 “먹튀"라고 비난받곤 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이 떠올랐습니다.

고객과 서비스에 집중 
투자를 받으려면 Economic Value Proposition을 잘 설정하고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해결할 문제점이 충분히 커야 하지만 그렇다고 스타트업이 초기부터 너무 큰 마켓을 타켓하는 것은 시간이나 리소스 측면에서 현실적이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이 대목에서 스티브 잡스의 명언이 떠오릅니다. “사람들은 집중이란 집중할 것에 예스(yes)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집중은 전혀 그런 게 아니다. 다른 좋은 아이디어 수백 개에 노(no)라고 말하는 게 집중이다. 실제로 내가 이룬 것 만큼이나 하지 않은 것도 자랑스럽다. 혁신이란 1천 가지를 퇴짜 놓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 ‘CNN 선정 스티브 잡스 10대 명언 중’에서). 전문가들은 투자자가 아니라 시장과 고객에게 촛점을 맞추고 일하라는 조언도 덧붙였습니다. 고객과 서비스에 대해 본인이 제일 잘 아는 만큼 확신을 가지고 밀어붙여 좋은 성과를 보여주면 투자자는 자연스럽게 몰려듭니다. 프레지(Prezi)는 헝가리에 본사가 있으나 그런 사실은 아무도 모르고 글로벌 시대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고객이 어디에 있는지는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특화되고 차별화된 서비스와 고객군에 집중하여 지속적으로 제품을 개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정부의 역할 
한국 스타트업의 미래에 대해 논하던 중 반드시 실리콘 밸리에 진출할 필요는 없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실리콘 밸리는 모바일 환경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상황은 아니라서 한국 시장과 많이 다를 수 있으며 한국은 그 자체로 충분히 크고 좋은 시험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 시장이 글로벌 성공의 발판이 될 수 있으려면 한국의 비즈니스 환경이 글로벌 환경과 큰 차이가 없어야 한다는 전제가 따릅니다. 이 대목에서 다시 인터넷 갈라파고스 규제 문제가 대두됩니다. 저는 런던과 실리콘 밸리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정부의 역할에 대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대답은 정부가 할 일은 별로 없으며 뒤에서 지켜봐주는 것이 전부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상 정부가 뭔가를 하고 싶어도 급변하는 기술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 보는 것 이외에 달리 할일은 없는 듯 합니다. 테크시티 관계자는 정부의 역할에 대한 질문을 받고 해외에 테크시티의 홍보를 열심히 해주는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영국 정부가 테크시티에 빌딩을 만들어주거나 물적 시설을 제공하지 않았던 것도 그제서야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것은 인터넷상의 불합리한 규제들을 하루속히 개선하는 일입니다. 그래야 한국시장에 먼저 촛점을 맞추어 시도해보고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는 일이 가능해집니다. 한국의 갈라파고스 규제에 맞춰 비즈니스를 하다가 전혀 새로운 글로벌 환경에 적응하려면 효율적인 경쟁을 펼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 스타트업의 미래를 위해서 다음과 같은 문제들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우수인력들이 자유롭게 스타트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할 것인가? 과도한 규제가 기업가정신을 훼손하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있습니다. 
  • 어떻게 하면 우수한 해외인력을 끌어들이고 인재와 문화 다양성을 높일 수 있을까? 
  • 어떻게 하면 스타트업에 친화적인 세금혜택을 부여하고 장애물을 제거할 수 있겠는가? 엔젤투자 내지 크라우드펀딩(crowdfunding) 이 보다 용이하게 이루어지게 하는데 장벽은 없는가? 
  • 실패한 기업가들이 다시 재기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 어떻게 하면 한국의 전반적인 비즈니스 및 투자환경에 대해 알려 해외투자가 용이하게 하고 스타트업의 exit (M&A 또는 IPO)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하는가? 
  •  한국 스타트업의 우수성을 어떻게 홍보하고 그들에 대한 투자자들의 접근을 높일 수 있을 것인가? 
  • 어떻게 하면 공공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개방해서 혁신적인 서비스가 많이 창출될 수 있게 할 것인가? 
실리콘 밸리의 전문가 한 분은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의 스타트업에 대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며, 2~3년 후에는 벤처투자자들을 초대하여 한국 스타트업 데모 데이같은 것을 실리콘 밸리에서 열어 보는 것도 좋겠다고 제안했습니다.

한국 스타트업의 잠재력은 무한합니다. 2주 동안 한국 스타트업팀들의 엄청나게 향상된 피칭 실력과 자신감이 늘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현지 참가자들만이 느낄 수 있었던 즐거움이었습니다.  500 Startups 관계자는 최근 자신이 참관했던 피칭 세션 중 한국 스타트업팀들의 피칭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잠재력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앞서 말씀드린 몇가지 문제들을 해결해야 합니다. 과연 한국이 아시아의 스타트업 허브가 될 수 있을까요? 그렇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것이 제가 머리 속에 담고 온 숙제였습니다.

작성자: 구글코리아 정재훈 변호사

*스타트업 런던 방문 관련 블로그는 여기 있습니다.